벨기에에 발을 디딘 지 어느덧 4주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면서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대중교통 이용법부터 은행 계좌 개설, 거주증, 그리고 미국 생활과 비교해 본 현지 물가까지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한 정착 정보들을 기록해 보려 합니다. 벨기에 유학이나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 대중교통: 앱 기반의 편리함과 낯선 하차 문화
벨기에는 대중교통 관련 앱이 잘 마련되어 있어 티켓 구매와 이용이 꽤 편리합니다. 제가 지내고 있는 북부 플란데런(Antwerp) 지역에서는 주로 De Lijn(버스/트램)과 SNCB(기차) 앱을 사용합니다. 지역마다 운영 기관이 달라서, 예를 들어, 브뤼셀로 가시면 STIB-MIVB 앱을 따로 이용하셔야 합니다.
🚌 De Lijn (버스 /트램) 이용
- 티켓 종류: 앱을 다운로드한 후 일회권, 10회차권, 일일권 등을 신용카드로 쉽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3개월권, 연간권도 존재합니다.), 혹은 신용카드에 touchless/contactless 기능이 있다면, 기사님 근처에 있는 단말기에 태그하여 비용을 지불 할 수 있습니다. (연간권 태그하는 단말기와 헷갈릴 수 있습니다. 잘 구분하여 신용카드용 단말기를 이용하셔야 합니다. 그냥 앱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60분의 법칙: 앱에서 티켓을 탑승 전 '활성화(Activate)'하면 60분 동안 De Lijn의 모든 버스와 트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사님께 표를 보여줄 필요 없이 그냥 탑승하면 되며, 가끔 불시 검문을 하는 승무원에게 활성화된 화면을 보여주면 됩니다.
- 주의할 점: 탑승하고 있는 도중에 60분이 지나가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환승을 위해 다음 버스나 트램에 '탑승하는 순간'에 60분이 지나 효력이 끝났다면 반드시 새 티켓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 낯선 하차 시스템: 이곳의 버스와 트램은 대부분 안내 방송을 해주지 않아 구글 맵 등으로 목적지와 현재 위치를 늘 확인해야 합니다. 내릴 때는 한국처럼 'HALTE'라고 적힌 벨을 눌러야 하며, 내리거나 타는 사람이 없으면 기사님이 정류장을 그냥 지나칩니다.
- 수동 문열림 버튼: 버스가 멈추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습니다. 문 근처에 노란 불빛이 들어오며 문열림 표시가 활성화될 때, 그 버튼을 직접 눌러야 문이 열립니다.

🦺 SNCB (기차) 이용 시 주의사항
- 100% 표 검사: 기차는 승무원이 단말기를 들고 다니며 모든 승객의 표를 스캔합니다. 앱으로 구매한 QR코드를 준비해 두시면 됩니다.
- 1등석(1st-Class) 주의: 자유석 티켓을 구매했다면 실수로 1등석 칸에 앉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앱에서 'Train Detail'을 누르면 몇 번째 칸이 1등석인지 미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대중교통 및 도로 위 소소한 풍경들
- 앤트워프 지역은 버스, 트램, 기차가 시간을 대체로 아주 잘 지키는 편입니다.
- 우버(Uber)는 한국이나 미국에 비해 물가가 매우 비싸게 느껴집니다.
- 정류장 근처에서 길거리 흡연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관련 규제 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 대중교통 안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거나 혼자 두 자리를 차지하는 무질서한 상황도 종종 마주치게 됩니다.
- 많은 현지인이 자전거로 출퇴근합니다. 특히 자전거 도로가 보도(인도)와 완전히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자칫 방심하면 자전거 동선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늘 주의해야 합니다.
-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신호등 기둥에 있는 '횡단 버튼'을 수동으로 눌러야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신용카드와 은행 계좌 개설의 독특한 절차
벨기에는 카드 결제 시스템이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지난 4주 동안 모든 계산을 신용카드로만 처리했고, 아직 현금을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대중교통 앱에 카드를 등록해 두면 티켓 구매도 막힘없이 가능합니다.
현지 은행 계좌 개설은 다행히 회사를 통해 진행하여 순탄한 편이었습니다. 다만, 벨기에는 여전히 직접 방문하여 종이에 친필 사인을 해야 하는 아날로그적인 과정이 남아있습니다.
- 메일로 받은 예약 링크를 통해, 예약을 잡기 위한 '사전 전화 통화 예약'을 먼저 잡습니다. (한국 전화번호를 적어도 국제전화가 잘 오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지정된 시간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면, 상담원과 영어로 대화하며 실제 은행 방문 날짜와 시간을 확정합니다.
- 예약 날짜에 은행에 방문해 서류에 사인을 하고 카드를 신청합니다.
- 약 2주 뒤 우편으로 카드가 발송되면, 반드시 'Bancontact'라고 적힌 ATM 기기를 찾아가 카드를 첫 활성화(Activation)해야 비로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벨기에 은행의 흥미로운 점: 벨기에 은행들은 운영 비용 절감을 이유로 자체 은행 ATM을 전부 없애고 있습니다. 대신 모든 은행 카드를 통합해서 사용할 수 있는 'Bancontact' 공동 ATM 시설을 도심 곳곳에서 이용하게 됩니다.
3. 휴대전화 개통의 난관: 거주증의 무게
여권만 있으면 선불 유심(Prepaid SIM)을 살 수 있다고 해서 Proximus, Orange 등 현지 매장을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Proximus는 어떤 플랜이든 거주증이 필요하다고 했으며, Orange 매장에서는 "여권으로 선불 요금제는 구입할 수 있지만, 물리 실물 SIM으로만 발급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제 폰은 eSIM만 지원하는 기종이어서 이것도 구입 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구입한 iPhone14 Pro) 결국 아직 거주증이 없는 저는 정식 번호를 개통하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Trip.com에서 인터넷 데이터만 사용할 수 있는 eSIM 플랜을 구매해 임시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Proximus가 한국의 SKT 같은 포지션인 듯합니다.)
4. 가장 높은 장벽, 거주증(ID)과 악명 높은 경찰 방문 절차
벨기에 생활은 '거주증이 있느냐 없느냐'로 모든 것이 나뉩니다. 휴대폰 정식 플랜 가입, 자동차 구매, 건강보험 등록, 각종 행정 업무 등 거주증이 없으면 제약이 너무 많습니다.
이 거주증을 신청하려면 먼저 장기 체류할 임대 주택(Permanent Address)을 구해야 합니다. 저는 아직 집을 구하는 중이라 대략적인 행정 절차만 파악해 두었는데, 그 과정이 참 독특합니다.
- 정식 계약 후 시청에 거주 등록을 신청하면, 약 2주 뒤에 지역 관할 경찰관이 예고 없이 해당 주소로 직접 찾아옵니다.
- 경찰은 우편함에 이름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집에 가구들이 채워져 있는지,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는 흔적이 있는지 아주 꼼꼼하게 실사를 한다고 합니다.
- 이 경찰 실사가 무사히 통과되어 확인 도장이 찍히고 나면, 또다시 2~3주 뒤에 최종 거주증이 발급되는 구조입니다. 벨기에 정착 중 가장 인내심이 필요한 구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5. 매운맛 물가와 21%의 세금
지난 4주간 몸소 체험한 벨기에의 물가는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해 먹는 비용(장바구니 물가)은 비교적 경제적이고 합리적이지만,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는 비용은 비쌉니다.
특히 벨기에는 일반 소비재에 보통 21%의 부가가치세(VAT)를 매기기 때문에, 자동차 같은 고가의 물건을 살 때 느껴지는 세금의 무게가 상당합니다. 직전까지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유럽으로 넘어온 저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에 비해 연봉 규모는 다소 줄어들었는데, 체감하는 세금과 물가는 오히려 더 높으니 초기에는 조금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나중에 이곳에 완전히 정착해 장기적으로 집을 매매하게 될 때, 미국의 살벌한 대도시 집값에 비하면 이곳의 부동산(집값)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선배들의 조언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6. 날씨: "날씨만 빼면"
벨기에에 살고 있는 어떤 현지인이 저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날씨 하나만 빼면, 벨기에는 정말 살기 너무 좋은 나라다." 지금 이 정착기를 쓰고 있는 오늘도 맑았다가, 흐렸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가, 바람이 불다가, 다시 해가 뜨는… 그야말로 하루에 사계절이 다 들어있는 듯한 변덕스러운 날씨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중입니다. 물론 일 년 중 일주일 내내 화창하고 눈부신 날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예측 불가능한 편입니다. 그래서 벨기에 생활에서는 언제나 우산을 소지하거나, 방수가 잘되는 바람막이(기능성 재킷)를 입고 다니는 것이 필수라고 다들 입을 모아 말합니다.
지금이 5월 중순인데도 낮 기온이 섭씨 10도 대에 머무는 선선한(어쩌면 조금 쌀쌀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인 4월에 한국에서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녔던 제 모습과 참 상반되는 요즘입니다. 유럽의 집이나 건물들에 왜 에어컨이 흔하지 않은지, 이곳의 기후를 겪어보니 점점 온몸으로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